수에즈를 우회하는 새로운 길, 세계 물류의 방향이 바뀌고 있다
2025년, 세계 해운 지도가 다시 그려지고 있다. 수에즈운하와 홍해를 잇는 기존의 주요 해상 루트가 불안정해지면서, 인도에서 중동을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대륙 간 물류 루트가 급부상하고 있다. 이른바 ‘IMEC(India–Middle East–Europe Economic Corridor,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이다.
IMEC는 2023년 G20 정상회의에서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유럽연합(EU) 등 주요 국가들이 공동 서명한 초대형 프로젝트로,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새로운 복합 운송망이다. 이 루트는 인도 서부 항만에서 아라비아해를 건너 사우디, UAE 등의 항만을 통과한 뒤, 철도와 도로망을 이용해 유럽 지중해 연안으로 이어진다. 기존 수에즈 경로보다 환적 과정이 줄어들고 항로 길이도 짧아 최대 40%까지 운송 시간이 단축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 루트의 진정한 의미는 단순한 항로 개척이 아니다. IMEC에는 전력망, 수소 파이프라인, 데이터 케이블 등 에너지·디지털 인프라를 아우르는 새로운 연결축이 포함돼 있다. 즉, 물류와 에너지를 동시에 흐르게 하는 ‘21세기형 복합 회랑’인 셈이다. 인도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새로운 공급망의 중심국으로 도약하려 하고, 중동 산유국들은 이를 기반으로 ‘물류 허브’와 ‘에너지 전환국’이라는 두 역할을 동시에 노리고 있다.
하지만 이 야심 찬 계획에는 정치적 그림자도 드리워져 있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갈등, 가자지구 전쟁, 홍해 해상 분쟁 등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IMEC의 현실화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일각에서는 “세계가 새로운 길을 찾는 동안, 그 길은 여전히 가장 복잡한 지역을 통과해야 한다”는 냉정한 평가도 나온다.
한편, 수에즈와 홍해 일대의 긴장은 이미 실제 물류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멘 후티 반군의 선박 공격으로 인해 주요 선사들이 케이프타운을 경유하는 우회 항로를 이용하면서 운항 거리가 길어지고, 보험료와 운항비가 급등했다. 한국 수출입 기업들도 이러한 비용 상승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북극 항로(NSR, Northern Sea Route) 역시 새로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러시아 북부를 거쳐 유럽으로 향하는 북극 항로는 계절적 제약이 있지만, 기후 변화로 운항 기간이 점차 길어지고 있다. 인도와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은 북극 루트를 활용한 장기 협력 가능성을 타진 중이다.
한국의 선사와 포워더(국제물류주선업체)들에게 이번 흐름은 단순한 해외 뉴스가 아니다. 새로운 항로의 등장과 함께 현지 파트너십, 항만 네트워크, 복합 운송 기술 확보가 필수 과제가 되고 있다. HMM을 비롯한 국내 주요 선사들은 이미 중동 노선을 확대하고, 사우디 제다·이집트 담에이타 항만 등과 신규 협력을 모색 중이다.
결국 세계 물류의 축은 ‘수에즈’에서 ‘인도·중동’으로 이동하고 있다.
새로운 길은 위험을 동반하지만, 그 속에 기회가 있다.
누가 먼저 그 길을 연결하느냐가 앞으로의 물류 경쟁력을 결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