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이 멈춘 자리에 로봇이 들어서며, 물류 산업의 권력 구조가 재편되고 있다
2025년의 물류 산업은 노동과 기술의 전면 충돌 한가운데 서 있다. 미국, 독일, 한국 모두에서 ‘물류 파업’과 ‘자동화 설비 확충’이 동시에 일어나며 산업 구조가 빠르게 뒤바뀌고 있다. 현장은 여전히 사람의 손에 의존하지만, 그 손을 대신할 기계들이 이미 라인 안쪽으로 진입했다.
미국 UPS는 2024년 대규모 파업 이후 ‘더 이상 멈추지 않는 물류’를 선언했다. 회사는 2028년까지 63개의 자동화 프로젝트에 약 90억 달러를 투입하기로 했고, 실제로 일부 거점에는 3,000대 이상의 로봇이 투입됐다. UPS의 창고 내부에서는 인간 노동자 200명이 3,000대의 로봇과 함께 움직이며, 하루 수십만 건의 배송 분류 작업이 쉼 없이 돌아간다. “로봇은 파업하지 않는다”는 문구는 이제 구호가 아니라 전략이 됐다.
노동계는 이를 “대체가 아닌 축소의 신호”로 본다. UPS 노조는 2024년 협상에서 임금 인상과 복지 개선을 쟁취했지만, 회사는 동시에 자동화 예산을 30% 확대했다. 인건비 절감 대신 기술 투자로 리스크를 분산시키는 방식이다. 인간과 기계의 공존은 여전히 불안정하다.
한국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CJ대한통운을 비롯한 주요 물류기업들이 자동 피킹 시스템, AGV(자율주행 운반차), AI 기반 물류 최적화 솔루션을 속속 도입하고 있다. 산업 현장에는 수천억 원 규모의 자동화 투자가 이어지고 있지만, 노동자 처우 개선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특히 야간 근무와 고온 작업, 반복적인 분류 업무는 여전히 인력이 감당하고 있는 영역이다. 자동화가 확대될수록 ‘사람이 해야 하는 일’과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의 간극이 커지고 있다.
산업 연구기관에 따르면 한국은 2030년까지 전체 일자리의 약 25%가 자동화 기술로 대체될 가능성이 있다. 이 중 물류와 유통 분야가 가장 빠른 전환 속도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자동화는 단순히 인력 감축의 문제가 아니다. 유지보수, 데이터 관리, 로봇 운영 등 새로운 형태의 전문직 수요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결국 노동의 형태가 바뀌는 것이다.
한편, 로봇 기술의 확산은 현장 안전 개선에도 일정한 효과를 가져왔다. 일부 자동화 창고에서는 부상률이 크게 감소했고, 반복 노동이 줄며 근로자 피로도가 완화되었다는 보고도 있다. 그러나 기업이 이 성과를 인력 감축과 연결시키는 순간, 갈등은 다시 격화된다.
2025년의 물류 현장은 ‘사람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노동의 방식을 재정의하는 기술’을 실험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 파업은 잠시 멈출 수 있지만, 기술의 흐름은 멈추지 않는다. 자동화는 이미 산업의 중심에 들어섰고, 기업들은 그 속도를 늦출 의사가 없다.
결국 물류 산업의 새로운 경쟁력은 ‘노동력의 값’이 아니라 ‘기계와 사람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공존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리고 이 공존의 경계 위에서, 인간의 노동은 다시 한 번 자신의 의미를 증명해야 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